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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장에도
MBTI가 있을까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MBTI를 물어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가 MBTI를 물어보는 진짜 이유는 4글자로 그 사람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인 상대 앞에서, 그래도 어디서부터 이해를 시작하면 좋을지 첫 실마리를 얻고 싶기 때문이겠죠.

시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거나 기존 시장를 다시 들여다볼 때, 쏟아지는 데이터와 변수 속에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시장은 대체 어떤 시장인 건데?"

디테일한 분석은 이후에 발로 뛰고 밤을 새워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가장 큰 방향감각부터 잡고 싶은데, 시장이란 복잡계를 단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죠.

VSD Market Topology 이미지 1

만약 사람처럼 시장에도 MBTI가 있다면, 적어도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방향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장의 MBTI, VSD 시장 지형도 (VSD Market Topology) 입니다.

VSD가 시장을 보는 방법

VSD 시장 지형도(이하 VSD)는 시장의 '규모'와 기업들 간의 '거리'만을 활용해 시장의 형태를 구분하는 프레임워크입니다. 시장 전체를 파악하기보단 MBTI처럼 방향성을 찾는 데 집중된 방법이죠.

실제로 VSD는 시장을 구분 짓는 각 요소를 Big(대) / Small(소)로만 구분합니다.

Volume — 시장 크기

이 전장의 규모 자체를 묻습니다. 수천만 명이 모인 거대 대중 시장인가, 소수의 마니아층이 모인 니치 시장인가?

Share — 점유율

특정 1~2개 플랫폼이 시장을 싹쓸이했는가, 아니면 여러 플레이어에게 점유율이 파편화되어 있는가?

Distanceabs — 절대 격차

1위와의 유저 수 차이가 마케팅으로 절대 뒤집을 수 없는 수백만~수천만 단위의 벽인가?

Distancerel — 상대 격차

하위 기업이 1위의 1/100 수준인가, 아니면 1/3~1/5 수준으로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할 체급은 되는가?

각 요소가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총 16가지의 시장 모델을 도출하고, 이 중 모순 없이 실제로 성립 가능한 8가지 유형을 추려 시장을 구분합니다.

No Volume Share Distance
(Absolute)
Distance
(Relative)
시장 유형
1 초거대 독식형 (Mega Monopoly)
2 거대 과점/양강형 (Mega Oligopoly)
미성립 [모순] 배수는 큰데 절대격차가 작은 거대 시장
미성립 [모순] 격차가 없는 완전경쟁인데 점유율이 쏠림
3 거대 롱테일형 (Giant Long-tail)
4 계단식 다극화형 (Tiered Multipolar)
미성립 [모순] 파이가 큰데 절대격차 없이 배수만 큼
5 거대 완전경쟁형 (Mega Red-ocean)
미성립 [모순] 파이가 작은데 절대격차가 큼
미성립 [모순] 파이가 작은데 절대격차가 큼
6 니치 독식형 (Niche Monopoly)
미성립 [모순] 격차가 없는 완전경쟁인데 점유율이 쏠림
미성립 [모순] 파이가 작은데 절대격차가 큼
미성립 [모순] 파이가 작은데 절대격차가 큼
7 니치 롱테일 파편형 (Niche Fragmented)
8 니치 완전경쟁형 (Niche Mud-fight)
DEEP DIVE · 이론적 배경

왜 하필 이 4가지 기준인가요? — 위상수학과 차원 축소

VSD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닌 위상수학(Topology)의 '차원 축소'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 비즈니스 생태계는 거시 경제, 소비자 심리, 경쟁사의 우발적 마케팅 등 무수한 변수가 얽힌 '비선형적 복잡계'입니다. 이 모든 변수를 완벽히 계산하려는 시도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위상수학에서는 공간이 아무리 변형되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 본질적 속성을 '위상 불변량(Topological Invariant)'이라고 부릅니다. 쉬운 예시로 도넛과 컵의 모양은 전혀 다르지만, 구멍의 갯수라는 위상 불변량 아래에선 같은 모양인거죠.

VSD는 시장의 수많은 노이즈 속에서도 왜곡되지 않고 최종적으로 남는 결과값, 즉 '기업 간의 거리(Distance)'를 시장의 위상 불변량으로 설정했습니다. 완벽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 디테일에 집착하기보다, 이 변하지 않는 뼈대만을 남겨 시장의 큰 그림을 빠르게 읽어내기 위함입니다.

VSD Topology 이미지 2

초거대 독식형

상위 기업 중위 기업 하위 롱테일 기업

구조가 전략을 강제한다

그럼 VSD를 통해 파악한 시장 유형은 어떤 방향성을 알려주는 걸까요? 단순히 시장 유형 자체만으론 직관적인 이해가 어려우니,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CASE STUDY

웹툰/웹소설 시장: 계단식 다극화형

웹툰/웹소설 시장에 VSD를 대입해 보면, 전체 파이는 매우 크지만(대), 1위 플랫폼의 점유율이 압도적이지는 않고(소), 선두와 후발 주자 간의 절대적 격차는 크지만(대), 후발 주자들도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할 체급은 됩니다(소).

이 구조를 파악했다면 큰 틀에서의 방향성이 눈에 들어옵니다. 계단식 다극화형은 다른 유형과 달리, 1위와의 절대 격차가 큼에도 중위 플랫폼들이 죽지 않고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지형입니다. 자연스럽게 '왜 중위권이 버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 시장을 이해하는 좋은 시작점이 됩니다. 구체적인 원인까지 바로 알 수는 없더라도, 중위권 생존의 배경 속에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정답 자판기가 아닌, 질문 설계기

하지만 VSD의 목적은 단순히 시장에 이름표를 붙이고 방향성만을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왜(Why) 우리 시장이 이런 지형을 띠게 되었는가?"를 역추적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THOUGHT EXTENSION

웹툰 시장 역추적: 계단식 다극화형

1. "왜 계단식 다극화 지형일까?"
1위가 거대함에도 중위 플랫폼이 안 죽고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지.
2. "왜 중위권 생존이 가능하지?"
1위 기업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는 고유 영역이 존재하니까.
3. "그 영역의 정체가 뭐지?"
독점 IP를 기반으로 특정 독자층을 겨냥한 '장르 버티컬 요새'구나.
4. "그게 왜 시장에서 작동할까?"
유저들은 여러 콘텐츠 앱을 동시에 이용하는 '멀티호밍'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지.

이처럼 지형의 결과를 원인으로 삼아 질문을 던지면, 시장이 작동하는 근본적인 원리와 후발 주자의 생존 전략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물론 실무자가 직면한 개별 도메인의 특성은 무한히 다양하고 변칙적입니다. 따라서 분석하는 시장에 따라 훨씬 더 날카롭고 다채로운 역추적 질문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VSD 개념이 생소해 백지상태에서 고민하기보다는, "왜 이 시장 유형일까?"라는 질문을 토대로 범용적인 '역추적 질문'들을 나침반 삼아 분석을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락인과 전환 비용

"고객은 왜 철새처럼 이동하거나 한 곳에 머무는가?"

완전경쟁형 다극화형 니치 독식형

해자(Moat)의 질적 속성

"무엇이 이 거리를 좁히는 것을 막고 있는가?"

양강형 다극화형 롱테일 파편형

생태계 위상

"경쟁자인가, 아니면 종속된 부품인가?"

초거대 독식형 거대 롱테일형

확장성의 한계

"어느 쪽 벽에 부딪혀 성장이 멈추었는가? 수직적 한계인가 수평적 한계인가"

니치 독식형 니치 파편형

이러한 가이드를 나침반 삼아 꼬리를 무는 역추적을 진행하면, 처음에는 거칠었던 '동쪽'이라는 넓은 방위각이 점차 좁혀지며 시장의 진짜 페인포인트와 현실적인 생존 경로가 드러나게 됩니다.

VSD Map 이미지 3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전략적 교배

그런데 만약, 이렇게 뼈를 깎는 역추적을 통해 구조적 딜레마를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산업 내에서는 이를 돌파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의 MBTI(유형)를 도출해 내면, 전혀 다른 산업군의 성공 공식을 우리 시장으로 전략적 이식(Transplant)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도넛과 컵이 전혀 달라 보여도 위상수학에서는 같은 구조이듯, 웹툰 시장과 OTT 시장도 겉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MBTI라면 작동하는 전략의 뼈대 역시 동일합니다. 마치 같은 MBTI인 옆 사람의 결과지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처럼요.

ISOMORPHIC STRATEGY TRANSPLANT

동형 지형 전략 이식

웹툰 · 웹소설

장르 버티컬 요새화
(BL, 로맨스, 무협 등)

글로벌 OTT

공포 전용, 애니 전용
장르 특화 OTT

같은 MBTI: [대-소-대-소] 계단식 다극화형

넷플릭스라는 거인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웹툰 시장의 '장르 버티컬 요새화'를 이식하면, '공포 장르 전용 OTT(Shudder)''BL 장르 전용 OTT(Heavenly)' 같은 뾰족한 방향성을 매우 빠르게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Isomorphic Strategy Transplant 이미지 4
또 다른 이식 사례

전환 비용이 0인 이커머스 전장에서 게이미피케이션(미니게임)으로 강제 락인을 유발한 테무(Temu)의 전략을, 송금 수수료 차이가 미미해 철새처럼 이동하는 유저가 많은 디지털 뱅킹(금융 앱) 시장에 그대로 이식하여 돌파구를 마련하는 식입니다.

이커머스 (Temu)

게이미피케이션 락인
(미니게임 / 보상 미션)

디지털 뱅킹 (Toss)

체리피커 유입 및 강제 락인
(행운복권 / 혜택 미션)

같은 MBTI: [대-소-소-소] 거대 완전경쟁형

한계점, 그럼에도 '거리'가 주는 가치

물론 VSD 프레임워크가 만능 열쇠는 아닙니다. 현실의 복잡한 숫자를 대(Big)소(Small)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다 보니 분석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큽니다. 또한 AI 같은 파괴적 기술의 등장이나 갑작스러운 정부 규제 등, 하루아침에 시장 판도를 뒤집는 '동태적 변화(Dynamics)'의 사각지대를 예측하기엔 다소 정적이라는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VSD는 MBTI처럼 디테일이 생략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위상수학이 모양의 변형 속에서도 본질을 짚어내듯 '기업 간의 거리(Distance)'라는 가장 뼈대가 되는 지표를 통해 직관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게 해준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습니다.

경쟁사와의 격차가 단기간에 돈으로 좁힐 수 있는 거리인지(전면전), 아니면 수천만 단위의 벽이라 사실상 뛰어넘는 것이 불가능한 거리인지(수비전/요새화)를 구분하는 것. 이 직관적인 인지 하나만으로도 막대한 시간 낭비와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의 늪을 벗어나 뼈대를 직시할 때

복잡한 비즈니스 전장에서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은, 숲을 보기도 전에 개별 나무의 잎사귀 수부터 세려 하는 '분석적 완벽주의'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가 얽힌 복잡계 속에서 정교함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본질적인 구조적 위치를 놓치기 십상입니다.

VSD 프레임워크의 가치는 세부적인 숫자를 맞히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형이라는 거친 뼈대만을 남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판이 대체 어떤 구조인가?"라는 핵심 질문으로 빠르게 접근하도록 돕는 프레임에 가깝습니다.

시장 분석이 막막할 때 복잡한 지표들을 잠시 내려놓고 시장의 뼈대부터 짚어보는 것. 거기서부터 실무적인 역추적과 진짜 전략이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프레임워크를 실제 시장에 적용해 봅니다. 웹툰 플랫폼 시장을 VSD로 역추적하여, 왜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양산형 공장식 시스템'이 구조적 필연이었는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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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몰입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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